하지만 기억이 맞다면 『문 세일링』의 조아라 연재는 겨울을 포함합니다. 완결이 올 봄이었다고 기억하는데, 그래서 겨울 내도록 따뜻한 남국의 바다를 그리며 읽었습니다. 지금은? 당연히 여름이니까요. 시원한 바다죠!



물론 소설에서 다루는 바다는 대개 더운 바다입니다. 다들 썬스틱을 바르고 다니니까요. 그것도 시세이도의 투명 썬스틱이 아니라 그을린 피부에 맞는 갈색 선스틱이라는 묘사가 있습니다. 하하하하. 서퍼들에게는 필수품인듯 하군요.



조아라 연재 당시 몇 번 언급한 적 있고, 그 뒤에도 내내 이제나 저제나 나오는 날만 기다렸습니다. BL이고 수위는 좀 있습니다. 전직 윈드서퍼와 서퍼의 이야기입니다.



사해의 아버지는 서퍼입니다. 스페인의 산 세바스티안에서 미국의 서퍼 브랜드 NOHA의 서프 클럽 지점을 맡아 운영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사해가 어릴 적 이온했고, 사해는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왔지만, 어머니의 재혼 후에는 더더욱 마음 붙일 곳 없어 적응하는데 애를 먹습니다. 그러다 어머니의 권유로 윈드서핑을 시작했고, 의외로 재능이 있었지만 어머니는 그걸 탐탁치 않게 여깁니다. 그래도 어릴 때의 경험이 도움된 건지, 한국대표로 주니어 대회에도 곧잘 나갔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합니다. 큰 대회를 앞두고 긴장한 것이 문제였지요.

그래서 세계 청소년 요트 선수권 대회가 스페인에서 열린 그 해에는 아버지에게 찾아갑니다. 그간 연락은 주고 받았지만 물리적 거리 등의 이유로 아버지를 오랜만에 만났더랬지요. 그리고 그 때 처음으로 올리아스 브리사 폰데 데 레온 로르카를 만납니다. 사해보다 어리지만 서핑에 굉장한 재능이 있는 꼬마입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덕에 기운을 얻고, 처음으로 우승을 합니다.


만. 이야기가 쉽게 흘러갈리는 없지요. 사해와 올리아스가 다시 만난 것은, 사해가 윈드서핑을 그만두고 막 햇병아리 Athletic Trainer가 되었을 때입니다. 아주 오랜만의 재회였지만, 사해가 AT 공부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올리아스는 사해를 덥석 잡습니다. 그간 계약하고 있던 올리아스의 AT는 나이가 많아서 은퇴하려는 걸 붙들고 있었다면서, 사해에게 AT를 맡아 달라고 한 거죠. 그리하여 사해는 자신의 마음은 가능한 숨기겠다 결심하고는 올리아스의 AT 자리를 수락합니다.



사해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올리아스를 좋아했고, 본격적으로 AT 공부를 시작한 것도 올리아스 옆에 서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한없이 댕댕이 같은(...) 올리아스는 그런 건 잘 모르지만 그저 사해가 좋고, 사해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합니다. 적고 보니 더더욱 댕댕이 같은데, 그것도 한없이 긍정적인 골든 리트리버입니다. 같은 리트리버라도 래브라돌보다는 골든 리트리버에 가깝습니다. 책임감보다는 순간순간의 자기 기분이 중요하고 더 나아가 사해의 행동 하나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오죽하면 매니저인 조엘이 올리아스를 두고 의처증 있냐고 했겠나요. 그것도 아직 한참 초반의 일인데.


이야기는 사해와 올리아스의 연애담이지만 그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서핑입니다. 올리아스는 주니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선수였지만 때가 맞지 않아 매번 월드 챔피언 자리는 놓쳤습니다. 그리고 직전 시즌의 가벼운 부상에서 회복된지도 오래되지 않아 바로 사해와 호흡을 맞추기 시작하지요. 사해는 여러 모로 올리아스를 챙기고 관리하며 올리아스는 기분에 따라 오락가락하지만 결국 항상 그 자리에서 받쳐주는 사해 덕분에 시즌을 무사히 헤쳐 나갑니다. 결과야 예상가능하지만 끝까지 따라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읽다보면 절로 서핑 영상을 찾아보게 됩니다. 분명 연재 당시에 여러 서퍼들을 모델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때 찾아볼걸 그랬나봅니다. 지금 보려니 일반적인 영상만 보게 되지만, 그래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기술들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묘사가 잘되어 읽는 것만으로도 머릿 속에 그려지거든요. 올리아스가 참 어린아이 같은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그 실력만큼은 소설 읽는 것만으로도 감탄 나올 정도로 대단합니다. 그걸 지지하는 것이 또 사해이기도 하고요.


『녹빛나무 희린도』에 『풋사과를 문 노루와 반딧불이』가 나왔던 것처럼, 『문 세일링』도 살짝 연결됩니다. 전작을 모르고 봐도 문제가 없지만 알고 보면 또 만났구나 싶은 이야기들이지요. 외전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읽다보면 누군지 알 사람이 하나 본편 등장인물로 나옵니다.




별스러운. 『문 세일링 1-4』. 비터애플, 2018, 각 3천원.



개인적으로 가장 부러웠던 것은 본편 완결 그 다음날의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날 올리아스가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가의 이야기인데, 매우, 매우! 부러웠습니다. 진짜로 돈만 생기면 저도 해보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와이의 파이프라인, 그 해변가에 잘 만든 집 한 채 구입하고 싶습니다. 읽는 동안 절로 꿈이 생기는 그런 좋은 소설이었습니다.(아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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