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이라고 보통 부르지만 실제 행정구역은 어떤가 궁금해서 찾아보았는데 한남동 맞네요. 제일기획 옆쪽 골목길을 내려가다가 만난 빵집입니다. 잼&브레드라고 하고 생긴 것만 봐서는 상수동이나 합정역 안쪽 골목 어드메에 있을 법한 분위기입니다. 음, 굳이 지정하자면 서교초등학교 근처.(...) 경사길에 있어서 계단을 몇 단 내려가야 합니다. 그걸 따지면 상수역 근방 분위기인지도 모르지요.


빵은 굉장히 취향이었습니다. 특히 무화과와 피칸을 넣은 호밀빵은 그 옆의 크랜베리 호두 캄파뉴보다 더 취향에 맞더라고요. 약간 콤콤한 맛에 고소하게 씹히는 피칸과 톡톡 터지는 무화과의 조합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날 자괴감을 느길 일이 한 건 있었지요.

이태원로와 한남대로 사이의 주택가는 평범한 주택가입니다. 다만 이태원 상권이 넓어지면서 이 아래쪽도 몇몇 주택들이 홍대나 상수동이 그러했듯 레스토랑이나 카페, 그 외 작은 가게로 변해가더군요. 다이칸야마에서 에비스로 넘어가는 것 같은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사는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일단 그 지역 분위기 자체가 고급형 소비지역 같은 느낌입니다. 물론 청담동 같은 분위기는 아니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 돈 쓰러 오는 곳 같습니다. 돌아다니다보니 옷집들도 기성품이 아니라 맞춤제작을 하거나, 몇 벌만 제작해 한정 판매하는 곳도 있었고요.

이태원 위쪽 길의 부티나는 분위기와 덩달아 물들어 가는(...) 언덕 아래 골목길의 분위기를 보고는 취향에 안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빵집이 보이더군요. 점심 시간이었습니다. 빵집 앞은 그늘이 졌고 거기에 점심 식사를 하고 잠시 쉬는 걸로 보이는 아저씨들이 앉아 계시더군요. 옷을 보아하건데 아마 건설업에 종사하는 것 같더랍니다. 쉽게 표현해 건설 막노동자 같더라는 거죠. 그 앞에 앉아 종이컵 하나를 들고 잠시 쉬시는데 그 앞에서 느낀 괴리감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아직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블로그에서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요.
비오는 날, 집 근처의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손에는 투명 비닐봉지에 담긴 케이크가 들려 있었고요. 근데 그 골목길의 카페 처마 앞에, 몇 번 그 근처에서 보았던 노숙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여름은 아니었고 약간 서늘하게 느껴지는 날씨였지요. 그 앞을 지나가는데 시선이 제가 들린 비닐봉지를 따라왔습니다.
그날 집에 가서 펑펑 울었습니다. 거기서 차마 손에 들린 봉투를 건네지 못한 용기없음에 대한 것도 있고, 나 혼자 잘사는 것 같은, 상대방에 대한 배신감도 느끼고 있었고요. 솔직히 그 당시의 일은 지금도 마음 편히 넘길 수 없습니다. 묘한 감각이고 묘한 감상이지만 잘 살고 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 정기적으로 일깨우는데 이날의 사건이 그랬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고 별 쓸모 없는 것에 돈을 쓰는 행위 자체에 대한 죄책감과, 그렇지 못한 이들을 배신하는 것 같은 느낌.

뭐, 뭐라하든 그런 감각을 느끼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은 자각합니다. 하지만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고치고 싶지도 않고. 적어도 그런 감각을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며 버릴 생각은 없으니까요.



덕분에 지름신은 많이 가셨습니다.(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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